한때 하이퍼카들만이 가능했던 출력과 속도 전쟁이 점점 무의미해지고 있다. 그들보다 훨씬 무겁고 심지어 온전한 2열 도어와 시트를 갖춘 차들이 그들만큼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무엇으로 경쟁해야 할까?
한때 출력은 자동차의 성능과 가치를 설명하는 가장 큰 무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사람들은 “페라리의 신형 스포츠카 출력이 무려 900마력입니다”라는 말에 더 이상 감동하지 않는다. 그보다 더 강력한 차들이 워낙 많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이전보다 출력을 올리는 일이 훨씬 쉬워졌기 때문이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더 큰 변화는 20년 전에는 벼랑 끝에 핀 난초 같았던 500~600마력 대 자동차를 가족과 함께 탈 SUV로 만나볼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합리적인 가격으로 말이다.
실제 조사에 따르면 최근 출시되는 자동차들의 출력은 20년 전에 비해 평균적으로 약 26% 향상됐다. 출력으로 따지면 약 55마력 가량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200~300마력 자동차가 스포츠카로 분류되던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패밀리 SUV도 300마력을 가볍게 넘는 시대다. 세상이 이렇게 바뀌다 보니 이제 출력 경쟁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인다. 불과 100마력을 넘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125년 전과 비교하면 세상이 바뀌어도 너무 많이 바뀌었다.
사실상 더 이상의 출력 경쟁은 가치와 의미 여부를 떠나서 인간의 한계와 싸워야 하는 문제에 직면하기 때문에 과도한 경쟁은 곧 희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2,000마력쯤 되는 차가 흔하다고 하고, 엄청난 토크의 차가 패밀리카로 쓰인다고 하면 사고 발생 가능성은 한없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출력으로 자동차의 가치를 논하는 일은 이쯤에서 그만두는 편이 낫다.
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남과 다른 무언가를 원하며, 자동차는 결국 인간의 우월감을 만족시켜줄 다른 무언가를 찾아야만 한다. 물론 지금까지는 그런 걸 찾지 못했고,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만약 지금 그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면 어떤 것이 출력을 대신할 훌륭한 지표가 될 수 있을까?
혹자는 무게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는 매우 일리 있는 이야기다. 일단 출력을 올리는 것만큼이나 무게를 줄인다는 건 매우 힘든 일이다. 안정성, 안전성, 비용 효율 측면에서 한계가 극명하다. 무엇보다 출력처럼 간단히 2,000마력을 달성할 만한 마법이 무게의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있다고 하더라도 전기모터와 배터리를 장착하는 것만큼 합리적일 수 없다.
한 마디로 매우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뜻이며, 이는 높은 출력에 지불했던 가치가 흘러들기에 아주 훌륭한 조건을 갖추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2,000마력에 가까운 출력을 내는 리막 네베라는 명목상 하이퍼카의 칭호를 갖고 있지만 무게는 무려 2.3톤에 달한다.
20년 전이었다면 이런 차는 스포츠카의 범주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여기서 전기차와 내연기관의 태생적 한계가 다시 드러난다. 리막 네베라가 터무니없이 무거운 이유는 단 하나다. 배터리 무게 때문이다. 다소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꺼내자면, 아무리 출력이 높아도 운전의 재미와 비례할 수 없다.
오히려 운전의 재미는 무게가 가벼운 쪽이 더 크며, 아무리 수많은 전자 장비가 돕는다고 해도 타이어의 한계까지 극복할 순 없다. 궁극적으로 로켓을 타고 성층권을 돌파하려는 게 목적이 아닌 이상 출력을 높인들, 중력이 지배하는 지구상의 물리 법칙을 초월할 순 없다.
물리 법칙의 한계에 도전하려면 차라리 무게가 가벼운 쪽이 훨씬 유리하다. 그리고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는 결국 출력도 줄여야 한다. 내연기관의 경우가 더 큰 영향을 받겠지만 출력을 줄이면 무게도 같이 줄일 수 있다. 무거운 엔진의 강력한 진동을 견디기 위한 차체 강성도, 시스템 냉각을 위한 열교환기의 면적도 줄일 수 있다. 심지어 무게의 한계를 버티기 위한 전자 장비도 전만큼 필요치 않다. 이는 전기차라고 다르지 않다. 그저 순수하게 물리 법칙의 한계에 도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쯤에서 오랜 이름을 다시 꺼내야 할 것 같다. 콜린 채프먼, 그는 늘 “차가 가벼우면 모든 곳에서 더 빨라진다”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의 주장은 언제나 사실처럼 받아들여졌다. 물론 여기에도 오래된 한계는 존재한다. 무게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대체로 비용 소모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더 값비싼 소재를 사용하던지, 혹은 보다 완벽한 구조 설계가 있던지. 아니면 편의성을 포기해버리든지 하는 트레이드오프는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한 가지 알아두어야 할 것은 스포츠카 기술의 낙수효과가 여전히 유효하려면 이제부터는 또다시 무게 경쟁의 시대로 돌입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의 전기차들은 동일한 크기의 내연기관에 비해 반드시 무거우며, 그만큼 쓸데없는 무게를 불가피하게 끌고 다녀야 한다는 뜻이다.
만약 무게 경쟁이 본격화되어 지금보다 더 가벼운 배터리, 더 가벼운 전기모터, 더 가볍고 안전한 차체가 개발된다면 이는 지속가능성 측면에서도 분명 좋은 일이다. 단적인 예로 타이어 소모량도 지금보다는 줄어들 것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예측해 보자면, 머지않아 출력을 논하는 일이 지금보다 더 무의미해진다면 그때는 가벼움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것이 우월함을 드러내는 시대가 올 것이라 믿는다.






















